송년회때 대표님이 '31일은.... 쉽니다'라고 술김에 말씀하셔서 월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징검다리 연휴라는 명목으로 쉬게 되었다. 그래서 외출이나 할까 하다가 창문을 열어보니 너무 추워서 포기하고 '과자나 몇개 사다가 영화나 보자' 라는 생각으로 얼마전 받아둔 화려한 휴가를 봤다. 사실 화려한 휴가를 보기전 까지는 광주민주화운동의 발생 배경이라던지 심각성에 대해 얼핏 보기는 했지만 자세히 알지는 못해서 실제로 이런 부끄러운일이 대한민국에서 일어났나? 라는 생각에 검색을 해봤다.
검색결과를 통해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글을 읽었는데 정권 장악을 위해, 누군가의 욕심을 위해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서로를 때리고 죽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건 논픽션이 아닌 픽션, 즉 사실을 바탕으로 한 영화였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지만 내가 사는 이 땅 덩어리에 이런일이 일어났다는게 수치스러웠다. 하지만 요즘 학생들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게 현 상황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한번쯤은 꼭 봐야할 영화라고 생각한다.
광주민주화운동의 발생과정을 살펴보면 5월 18일 계엄군이 전남대생의 등교를 저지하자 계엄해제, 휴교령 철폐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공수부대가 투입되어 시내 곳곳에서 유혈진압을 했다. 5월 19일 금남로 일대에서 학생, 시민과 공수부대원들과의 투석전이 전개되었다. 공수부대 4개 대대로 병력을 증파했다. 5월 20일 고등학교 휴교조치가 내려졌고, 시위가 전 시가지로 확산되었다. 금람로에서는 택시 차량시위가 있었고, 시위 군중들은 MBC건물을 방화했다. 시위대가 차량을 앞세워 군의 저지선을 돌파하려하자 일제히 발포하여 시민 두명이 사망했다. 5월 21일 시외전화가 두절되었다. 시위대는 광주KBS건물을 방화했다. 시위대는 아세아 자동차 공장을 습격하여 장갑차와 군용트럭을 탈취했다. 오후1시 도청의 스피커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서 계엄군은 시민들을 향해 일제히 사격을 시작했다. 10분간 이어졌으며 최소 54명이 사망했다. 이에 무장의 필요성을 느낀 시위대는 지서, 경찰서, 군부대 등에서 다량의 총기를 탈취하였다. 공수부대는 도청에서 조선대로 철수했다. 5월 22일 도청에서는 시내 유지급 인사, 목사, 변호사 등을 중심으로 수습대책위원회가 결성되어 계엄사에 요구할 협상조건을 토론하고 무기회수를 시작. 수습대책위원회는 회수한 무기 중 일부를 가지고 상무대 전남북계엄분소를 찾아가 7개항의 요구조건을 내걸고 계엄군측과 협상. 5월 23일 도청 앞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제1차 범시민 궐기대회를 개최. 이 때 파악된 피해상황이 보고되었고, 장례준비를 위한 모금운동을 벌이기도 함. 주남마을 앞에서 공수부대 소형버스에 총격 17명 사망.
미국은 광주에서 과잉진압을 한 공수부대는 한미연합사령관의 작전통제권 밖에 있는 부대라고 했지만 5월 초 신군부가 대도시 외곽에 학생시위를 막기 위해 공수부대를 배치할 때 위컴 한미연합사령관에게 허락을 받았다. 또한 신군부세력은 5월 16일 20사단의 작전통제권 해제를 요청했고, 미국은 이를 승인했다. 이 말은 광주에 공수부대를 파견할 때 한미연합사령관의 허락을 받았다는 것이다. 위컴은 공수부대의 투입을 알았고, 이들이 투입되면 공수부대와 시민간의 마찰이 일어날 것을 어느정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제제를 가하지 않은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노태우 정권은 1988년 민주화합추진위원회라는 한시적인 기구를 만들어 광주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양비론적인 시각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을 민주화 투쟁의 일환이라고 인정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직후 국회에서 5공비리 청문회가 열려 일부 진상이 폭로되었다. 1990년 7월 여당인 민자당이 날치기로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등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켰다. 노태우, 김영삼 정권에 걸쳐 피해자 2.224명에게 1.427억의 보상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1988년 청문회에서 실질적인 진상규명에 실패했다. 김영삼 정권기에 가해자 처벌을 위해 1995년 9월 중순경부터 5.18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 서명운동이 전개됐다. 1995년 10월에 노태우 비자금 파문이 있었고, 김영삼 대통령은 5.18 특별법 제정을 약속했다. 1995년 12월 5.18 민주화운동에 관한 특별법이 통과되었다.
5·18정신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큰 틀에서 3가지의 정신으로 나눌 수가 있다.
첫째는 참여와 저항정신이다. 당시 거의 모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공수부대의 야만적인 폭력에 굴하지 않고 하나가 되어 싸웠다는 점이다.
둘째는 대동 나눔 정신이다 민중항쟁의 전 기간 동안 광주는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며 위기를 가장 인간다운 삶의 협동심으로 대처했다는 점이다.
셋째는 민족 민주정신이다. 항쟁 기간동안 광주의 시민들은 질서를 유지하고 그들이 갖고 있는 도덕성을 유감 없이 발휘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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